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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 문수산 석가사 주지 선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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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1-03 13:22 조회1,4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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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문수산 석가사

행복한 세상 자비도량

주지 선주스님 솔선수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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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에서 벗어나 생사 밖에 있는 해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생사의 모습을 여실히 아는 여실지견(如實知見)에 따라서 생사가 괴로움의 세계가 아님을 알게 되고, 아울러 모든 불만족이 그 자체로서 불만족을 낳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끄달림 때문임을 말씀 드렸습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 등 4고 8고는 그 자체로써는 괴로움이 아닙니다. 괴로움의 뿌리는 집(集), 곧 자아의식으로 얽매여 있는 것입니다. 이는 자아(自我)의 허상을 유(有)나 무(無)따위로 집착하는 것입니다. 자아가 그 자체로서 결정된 것이 없고 인연조건에 따른 나툼에 지나지 않은 것을 알게 될 때 공(空)의 세계가 열리게 됩니다.
그래서‘반야심경’에서는 깊은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 곧 집착이 다만 업에 따른 허상임을 여실히 알고 연기세계로서 낱낱을 나투는 공에 대한 체득을 이룰 때, 모든 고액이 다 사라진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괴로움의 세계는 자아의식에 의해 시공이 제한된 세계입니다. 이 세계가 무아.무상을 여실히 아는 수행에 따라서 제한된 시공을 벗어나게 되는 순간, 어느때 어느 곳을 가리지 않고 한없는 지혜광명의 부처님(無量光佛)인 비로자나 부처님이 나투는 것입니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세계는 의(意)에 따른 시공의 제한인 업이 지멸된 세계입니다.
세상의 가장 값진 보배라 해도 그 가치는 제한돼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가치의 잣대를 재는 사람의 마음이 한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빈 마음은 아무런 제한 없는 마음이고 그 자체로 시공을 넘어선 마음으로 이곳에서 온갖 생명의 창조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생명은 마음이 고향이고 마음은 드러난 생명들의 모습만큼이나 여러 터전을 다 마련하니 마음이란 한정된 영역이 없기 때문입니다.

빈 마음의 한정 없는 생명 창조의 모습은 중생의 제한된 의식을 넘어선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알 수 없습니다.
뜻대로 생각할 수 없는 생명들의 향연을 풍성하게 나투는 것이 해인삼매입니다. 해인삼매를 삼매가운데 삼매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해인삼매를 마음대로 드나드는 사람을 능인(能人)이라 하는데, 능인의 마음자리인 여의보배에서 뜻대로‘如意’낱낱 모습들이 제 모습대로 나툰 것입니다.

화엄에서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아무런 다를 바가 없다고 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착한 마음이 일어나면 그 마음을 꿰뚫어 보고 악한 마음이 일어나면 또 그 마음을 꿰뚫어 보십시오.

그때는 착한 마음 그대로 부처님이요 악한 마음 그대로 부처님입니다. 이때 선악의 분별이 사라지고 빈 마음의 법계 부처님이 온갖 마음으로 나툰것이니 마음 마음이 부처님의 세계요 낱낱 중생과 사물들도 또한 부처님의 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동심으로 온갖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입니다. 마음이 대상에 따라 움직이면 안됩니다.

그때는 이미 스스로의 마음이 아니라 마음밖에 또 다른 마음이 있는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황벽 스님께서는“착한마음 그대로 부처님이요 악한마음 그대로 부처님”이라 하셨습니다.

마음이 마음이 아니니 빈 마음에서 나온 모든 마음은 그대로 법계 부처님의 여의보배인 마음 자리에서 뜻대로 나툰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성게의 두 번째 게송에 모든 법은 움직이지 않는 본디의 고요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마음을 조주 스님께서는 평상심(平常心)이라 하셨습니다. 모든 현상이 마음에서 일어났으나 마음은 한 번도 고용한 모습을 잃지 않고 부동으로 있습니다.

움직임 그대로 움직이지 않음이고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온갖 움직임이 그 자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 또한 중생의 제한된 의의 작용인 망념으로는 알 수 없으니 부사의(不思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스스로 여의보배를 갖고 뜻대로 부처님의 해인
삼매에서 생각을 넘어선 생명들의 장을 풍요하게 연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 그 자신은 모르고 있는 것을‘법화경’의 ‘신해품’에서는 궁자의 비유로 설명하시고 있습니다.
‘화엄경’에서 선재 동자가 깨달음을 위해 여러 선지식을 찾아다니고는 마지막에 첫 번째 자리로 돌아와 완전한 깨달음의 세계를 열고 있는 것도 같은 경우입니다.

이 자리를 여의지 않고 뜻대로 여의보배인 마음자리에서 풍성한 생명의 장을 여는 것이 무아.무상의 삼매체험, 곧 제한된 중생심의 시공을 벗어난 해인삼매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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