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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탈자재한 대은좌지인 울산 화엄사 대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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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2-23 10:39 조회2,1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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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탈자재한 대은좌지인 울산 화엄사 대산스님


학식과 덕행을 겸비한 대산 스님.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은 철저한 수행과 이웃을 자신의 몸 이상으로 아끼는 자비로운 보살로 알려져 살아있는 부처(生佛)라고까지 칭송되고 있다. 산 넘고 물 건너 대산 스님의 운수행각은 전국 어느 절이든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고 홀연 출처 없이 왔다가 자취를 감추는 떠도는 구름처럼 무애자재한 수행에 철저, 무심(無心)의 도인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두루 통달했다. 가득 고이면 넘어가는 정체하지 않는 물처럼 자연스런 경지를 개척했다. 남을 위하고 법을 위한다는 생각조차 없이 머무는 바 없이 허공보다 큰 마음으로 ‘응무소주 이기생심’으로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 중생을 위해 육바라밀을 실천하고 있다.
대산 스님은 인터뷰에서 “말할 수 없는 것을 능히 말할 수 있고 행해야 할 것을 곧 할 수 있는 사람, 정신의 칼날이 서고 바위도 깨뜨릴 수 있는 번개같은 저력을 지닌 도인이 그립다”고 말했다.


어제는 봄이 왔나 했더니 오늘은 가을이라
연년세세 세월은 시냇물처럼 흘러가는데
세상명리 탐하여 구차히 사는 이들
품은 뜻도 못채우고 헛되이 머리만 세었구나

昨작時시新신春춘今금是시秋추 年연年년日일月월似사湲원流류
貪탐名명愛애利리區구區구者자 未미滿만心심 양空공白백頭두

대산 스님이 게송하여 말하되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시방세계역부지(十方世界亦無地)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일체무유여래자(一切無有如來者)

하늘과 땅 사이에 부처님 같으신 분 없고
시방세계에 비할 자 없구나.
세간에 있는 모든 것 다 보았으나
모두가 부처님 같으신 분 없구나.”

대산 스님이 법상(法床)에 올라 “99는 81이라”하시고 또 주장자로 법상을 한번 굴리고 ‘사고(師姑)는 원래여인주(原來女人做)니라.” 또 주장자로 법상을 한번 굴리시고 “곡각리(曲脚裡)에 유직각(有直脚)이라.”
“환회마(還會)아 알겠느냐?” 여기서 분명히 알 것 같으면 이 자리에서 해제를 해서 마쳐 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백천법문과 무량묘의와 무진삼매를 한꺼번에 다 깨쳐 천상인간에 무애자재해서 등등임운(騰騰任運)하고 임운등등하게 된다. 또한 역대 조사와 모든 보살과 더불어 조금도 다름이 없이 똑 같은 경지에서 행주좌와하고 어묵동정하며 동서남북으로 항상 황황혁혁하고 외외당당해서 만겁에 독로하고 만겁에 체자여여(體自如如)해서 영원히 매(昧)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이가 나에게 묻기를 “깨닫고 통하기 전에는 어떻습니까?” 하기에 “동지한식(冬至寒食)이 백 오일이라” 답했다. 이 ‘동지한식 백 오 일이라’하는 뜻을 잘 모르면 불법의 참된 골수를 꿈에도 보지 못하는 것이라. 또 누가 내게 와서 “스님은 견성을 했습니까, 못했습니까?”하고 묻기에 역시 “동지한식 백오 일 이라”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묻는 사람은 말하기를 “저는 스님의 대답이 다르게 나올 줄 알았습니다.” 하기에 “동지한식 백 오 일이라는 뜻을 아느냐?” 하니 “제가 물을 때에 저를 때릴 줄로 알았는데 동지한식 백오 일이라 하니 정말로 알 수가 없습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이것은 손쉬운 문제가 아니지만 이것을 바로 알면 불견(佛見) 법견(法見)이 있을 수 없는 경지가 된다. 그러나 만약에 티끌만치라도 불견법견이 남아 있을 것 같으면 대은좌지인(大穩坐之人)은 될 수가 없다. 이와 같이 정문정안(正門正眼)을 수지해야만 참된 종사(宗師)가 될 수 있고 불법을 제창(提唱)할 수가 있는 것이다.
대산 스님은 “고인(古人)이 말하길 “오역불무(悟亦不無)나 낙재이두(落在二頭)라(깨달음이 또한 없지는 않으나 이두(二頭)에 떨어져 있다)” 했고 또한 “도즉불사(道卽佛謝)나 공상아존(恐傷兒孫)이라(이르는 것은 사양하지 않으나 자손을 상하게 할까 두려워 한다)”고 했다.
대산 스님은 “이 뜻은 매우 깊은 중요한 말이니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제일구하(第一句下)에 천득(薦得)하면 불조(佛祖)로 더불어 스승이 되고, 제이구하(第二句下)에 천득하면 인천(人天)으로 더불어 스승이 되고, 제삼구하(第三句下)에 천득하면 자구(自求)도 불료(不了)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고인은 논(論)하기를 “제일구는 여인인공(如印印空)하고 제이구는 여인인수(如印印水)하며 제삼구는 여인인니(如印印泥)라” 했다(제 일구는 인을 가지고 허공에 인치는 것과 같고, 제 이구는 인을 가지고 물에 인(印)치는 것과 같으며 제 삼구는 인을 가지고 진흙에 인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렇게 말한 것을 아는 사람은 다 환하게 아는데 고인(古人)들이 말하기를 “도불속지불지(道不屬知不知)라(도는 알고 알지 못하는데 속하는 것이 아니다)”고 했으니 이것을 바로 해결해야만 제 일구와 제 이구와 제 삼구를 판단할 수 있다.
임마야불시(恁也不是)요, 불임마야불시(不恁也不是)며, 임마불임마총불시(恁不恁總不是)라 하면 진금실색(眞金失色)이라. 임마야시(恁也是)요, 불임마야시(不恁也是)라. 임마불임마총시(恁不恁總是)라 하면 확토성금(攫土成金)이라고 했다.
대산 스님은 “우리가 깨달으면 만상삼라응현후(萬像森羅應現後)에 일일명명일일진(一一明明一一眞)이 되고, 이런 경지를 개척해야만 수방자유(收放自由)가 있고 여탈자재(與奪自在)가 있으며 살활자재(殺活自在)가 있으며 종횡무애(縱橫無碍)가 있다”고 밝혔다.
조주 스님은 어릴 때에 깨달아서 팔십이 넘도록 행각(行脚) 했는데 제방(諸方)에 선지식과 담론하여 진안목(眞眼目)을 갖추기 위해 행각(行脚)했었다.
대산 스님은 옛날에 조주 스님이 한 암자에 가서 “암주재마(庵主在)” 하고 물으니 암주가 “수권(拳)을 해 보였다. 수권이란 주먹을 바로 들어 보이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조주 스님이 말하되 “수천불시박선처(水淺不是泊船處)”라(물이 얕아서 이곳에 배를 정박하지 못하겠노라)”하고 가 버렸다.
조주스님은 이와 같이 말을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은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알아챈다”고 말했다.
어느 날 또 조주 스님이 또 다른 암자에 가서 “암주재마(庵主在)아”하고 물으니 암주가 또한 “수권”을 해 보였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조주 스님이 “능종능탈(能縱能奪)하고 능살능활(能殺能活)이로다(능히 주기도 하고 능히 빼앗기도 하며 능히 죽이기도 하고 능히 살리기도 한다)”고 말하면서 예배를 했다.
그러면 똑같이 주먹을 들어서 보였는데 한 사람은 어째서 긍정(肯定)하고 한 사람은 어째서 불긍했는지 대중은 알겠는가?
간각하(看脚下) 하라!
주장자를 어깨에 메고 산암자를 찾아
여러 해 행각 끝에 파참이 됐네,
이 몸이 얻은 불법 알고 싶다면
일러주리 전삼삼 후삼삼 이라고.
橫擔櫛標入山庵(횡단즉률입산암) 行脚多年事罷參(행각다년사파참)
欲識山僧親切處(욕식산승친절처) 前三三與後三三(전삼삼여후삼삼)
대산 스님은 게송하여 말하되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요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이라,
한 티끌 작은 속에 시방세계를 머금었고 한 생각이 한량없이 먼 겁을 즉(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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