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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조계종 원로원장 각성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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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6-02 12:07 조회1,0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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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조계종 원로원장 각성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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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묘의 진진삼매를 통철히 깨치면 명경망대 걸림이 없다
닦는 마음도 닦을 마음도 없는 우리 시대의 참다운 대도사 각성 스님.

걸리고 막힘없는 대해탈의 진리로 여여부동하게 고통중생을 제도하고 있다. 상처받은 일체중생들의 교화를 위해‘質’의 불교운동을 제창, 우리나라 불교가 미래와 세계로 새 지평을 열어 제치는 새로운 시작의 생활 불교운동을 실천, 각성 스님이 움직이는 현장에 한국불교의 미래가 좌우된다는 신종어가 만들어지고 있어 한국불교의 얼굴로 회자되고 있다.

이제 한국불교는 한치의 물러남도 없는 금강 같은 지혜로 자유자재하게 개혁과 용맹정진으로 기용제시를 발휘하여 우리도 당당히 그 주역이 되어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편집자 주>

 

산중에 무엇이 있느냐 하면 산꼭대기에 흰 구름이 많지요 다만 마음속으로 희열을 느낄뿐 가져다 드릴 수는 없소이다.
산중하취유 영상다백운 山中何取有嶺上多白雲
지가자이열 불감지증군 只可自怡悅不堪持贈君
각성 스님은 게송하여 말하되
“춘도청산일양춘(春倒靑山一樣春)이요
삼월화풍만산훈(三月花風萬山勳)이라
천강유수일미수(千江流水一味水)요
추담월추천일색(秋潭月墜天一色)이라
봄이 청산에 오니 골짜기마다 한가지 봄이요 삼월달 꽃바람이 불어오니 만산이 붉은 꽃 빛이로다. 천 강에 흘러내리는 물 맛은 한 가지요 가을 못에 달이 비치니 천지가 한 빛이로다.”
각성 스님은 “유일기(有一機)하니 위음왕불이전(威音王佛以前)에는 동(東)을 쫓아서 서(西)에 서고 누지불 이후(樓至佛以後)에는 서를 쫓아 동에 선다 했는데 대중은 알겠는가?”반문했다.
각성 스님은“여기에서 동과 서를 확연명백하게 알 것 같으면 일체 모든 무량묘리와 진진삼매(塵塵三昧)를 모두 파악해 통철히 깨쳐 명경망대(明鏡望臺)와 같이 검은 것이 오면검게 나타나고 붉은 것이 오면 붉게 나타나서 조금도 걸림이 없고, 또 아무리 백천만억경계(百千萬億境界)가 오더라도 거기에 아무런 장애가 없이 여여부동해서 일체 모든 경계가 여기에서는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 불법은 누구든지 깨달음으로써 아는 것이지 깨닫지 못하면 천경만론(千經萬論)을 외우고 사용하더라도 무용지물이다.
이와 같이 부처님 법은 깨달은 분상(分上)에서는 여윌래야 여윌 수도 없고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연꽃은 항상 물가운데 나는 것이지 높은 언덕이나 메마른 땅에는 나지도않고 클 수도 없는 것이며, 마음속에 핀 연꽃은 섭씨 수천도 온도나 수만도 뜨거운 불덩이에도 지지 않고 항상 언제든지 염화미소로 찬연하게 피어 있는 것이다.
이 세계가 불바다가 되어 잿더미가 되어도 그 연꽃은 더 빛나고 더 향기가 나서 처처에 다다르는 곳마다 향기가 더욱 분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공부를 해서 깨달아 자기의 안목을 소소영영하게 확실히 밝게 갖출 것 같으면 화중생련(火中生蓮)과 같아서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 도리를 능히 해결해서 깨달을 것 같으면 최초 위음왕불 최후 누지불 후에도 다함이 없이 항상 마음대로 쓸 수있는 것이다.
허공은 다함이 있을지언정 이 도리는 다함이 없어 한 번 깨치면 영겁에 미(迷)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 예토 세계에 오셔서 일대 장교를 설하심이 명안 종사의 안목으로 오히려 모래를 뿌리고 흙가루를 뿌리는 것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각성 스님은“마치 수미산 보다 몇 천 만 배나 더 크고 많은 진수성찬이 가득히 있어 일체 모든 사람이 미래제가 다하도록 배부르게 먹고도 남는데 공연히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셔서 쉰밥이나 찌꺼기 밥을 먹으라고 권하는 것과 같다”는 이치라고 전제한 뒤“달마 대사가 동토(東土)에 법을 전하려 온것도 역시“대담수매해변(大擔水賣海邊)이라(물통을 짊어지고 해변가에 와서 물 장사 하는 것과 같은 이치)”고 밝혔다.
각성 스님은“우리가 부처님 공부를 하기 전이나 공부를 한 이후라도 자기의 근본이나 정법안장이나 공겁전 자기는 항상 스스로 드러나 있고 조금도 모자람이 없나니 여기에 경지의 한계에 대해서 누가 와서 뭐라고 할 것인가?”하고 말했다.
각성 스님은“이와 같은 정문정안(頂門正眼)으로서는 몸 전체가 이 손이요, 또 눈이다. 여기서 몸 전체라고 하는 것은 조그마한 이 육신 몸뚱이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도 덮고 땅도 덮고 대천세계를 덮을 만한 안목을 갖춘 큰 몸을 말하는 것이다”며“그래서 전체가 눈이요, 손이라는 것은 마음대로 보고 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뭣이라고 이름해도 축착합착이 되어서 맞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게된다”고 밝혔다.
모든 불조가 살활(殺活)이 자재하고 수방(收放)이 자유하며 기용이 무애해서 살활종탈을 마음대로 하고 기용제시(機用提示)를 마음대로 쓰는 것이다.
각성 스님은 오도 삼매의 소식에 대해 다섯 가지의 삼매 법문을 일체를 무릅쓰고 대중을 위하여 일갈했다. 첫째는“시간과 공간을 꽉 잡아 정하여 실오라기만치도 누설하지 않게 온 세상 사람들이 혀를 댈 수 없게 하는 것”이며, 이것은 납승의 ‘정법의 명령’이요, 둘째는“정문(頂門)에서 광명을 놓아 사해천하를 두루 비추어 낱낱이 환하게 밝히는것”이며, 이것은 납승의‘금강 눈동자’라 할 것이요, 셋째는“쇠를 녹여 금을 만들어 홀연히 잡았다가 또한 놓아주는 것”이니 이것은 납승의‘주장자’요, 넷째는“천하 사람들의 혀끝을 놀리지 못하게 하고 숨도 쉬지 못하게 한 다음 거꾸로 삼천리를 물러가는 것”이니 이것은 납승의‘기백’이라 할 것이요, 다섯째는“진 시방삼세의 일체 일체 모든 부처님과 내지 문수·보현과 천하 선지식이 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대 광명을 놓아 한량없는 백천 삼매와 법문과 방편과 신통으로 대법륜을 굴려서 일시에 무량중생을 제도하여도 눈도 깜짝하지 아니하고 돌아보지도 않는 것은 이 납승의 ‘특별히 수용하는 경지’이라 할 것이다.
이상의 낱낱 삼매를 모두 다 밝혀 얻어 어디서나 자유자재하여야 남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각성 스님은“건곤을 바라보는 안목을 가지려면 다시 더 최고봉에 올라서야 하리라”하면서, 주장자를 한 번 굴리고 법좌에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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