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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조계종 약명사 호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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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05-03 17:23 조회1,1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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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조계종 약명사 호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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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 스님. 그는 신심이 견고하여 성불의 원력을 세운 시대의 법기로 평가되고 있다. 탐진치를 버리고 구름처럼 물처럼 사해팔방을 내 집처럼 돌아다니며 두타행과 운수납자의 길을 개척하며 고행을 낙을 삼고 자선은 무사태평한 견지를 성취했다. 향덕 스님은 하루는 꿈 속에서 어느 대사가 “내가 이제 여래의 성희를 알고 보니 여래가 이제 내 몸 가운데 있도다. 나와 여래는 다를 바가 없으니 여래가 곧 나의 이 진여성임을 알겠도다”는 게송 지어주어 발심 득도했다.
호산 스님은 인터뷰에서 “옛날부터 불가에서는 이심전심, 견성성불, 본래무일물 등 심이니 불이니하여 이렇게도 말해보고 저렇게도 풀어주었지만 중요한 핵심은 자기 마음을 붙잡고 있는 자기 성품을 바로잡고 자기의 주체를 회복하자는 것이 불교의 본 뜻이라”고 말했다.


문득 본래사 깨닫고 보니
부처와 조사가 모두 어디 있는가.
뱃속에 하늘과 땅을 간직하고 몸을 돌려 사자후를 하더라,
불립, 불사, 불후 티끌 하나도 세울 수 없고
티끌 하나도 버리지 않으며 모든 일을 멈추지 않는다.

忽홀覺각本본來래事사 佛불租조在재何하處처
장裏리藏장乾건坤곤 轉전身신獅사子자吼후
不불立립, 不부捨사, 不불休휴

호산 스님이 게송하여 말하되
“막방여래청정신(莫謗如來淸淨身)
 화탕지옥재목전(火湯地獄在目前)
 약인요득언중의(若人要得言中意)
 화탕홀변연화중(火湯笏變蓮花池)

 여래의 청정법신을 비방하지 마라.
 화탕지옥에 갈 것을 모르느냐?
 혹시 어떤 사람이 욱 하는 가운데 뜻을 알면
 화탕지옥이 홀연히 연꽃 못이 되리라.”


호산 스님은 불교의 명제는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수행의 화두로 삼고 있다.
《열반경》에서 호산 스님은 “인간이 낳고 죽을 때까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며 “제행무상 시생멸법(諸行無常 是生滅法)이라.” 그 자체에 영원할 수 없는 속박의 요소까지도 버려야 한다고 했다.
호산 스님은 “불교의 위대성은 심오한 진리에 있는 것도 아니며 삼학에 능통한 강론도 아니며 성불을 위한 기도정진도 아니라고 반문하며 그런 것을 모두 버리는 데 있다”고 말했다.
“방하착(放下着)”하고 손발을 번쩍드는 것도 버려야 한다.
부처님이 이 사바세계에 오신 참뜻은 무엇인가? 그것을 우리에게 너무나 소소영영하게 보여 주고 있다. 중생은 소유의 화신이다. 소유하지 못하면 자기의 삶을 지탱할 수 없는 잘못된 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출가사문은 자신을 버리는 망아적 무소유 정신을 보여줘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출가의 대도는 무소유이며 그것은 몸소 소유물을 베풀며 몸소 자기의 부정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자기의 부정의 부정으로 인한 대긍정이다. 과연 우리 출가사문은 이러한 정신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옛날 용호(龍湖) 스님은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을 거고, 창랑의 물이 더러우면 발이나 씻으려네(창랑지수청혜(滄浪之水淸兮), 가이탁오영(可以濯吾纓), 창랑지수탁혜(滄浪之水濁兮), 가이탁오족(可以濯吾足).”
그는 평생 무소유로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고 채소를 가꾸어 주리고 병든 이웃을 도우며 살았다.
또한 용호 스님은 “머무는 곳이 최고의 도량이다.”며 “어느 장소든 이 곳이 나에게는 극락세계다”는 진면목을 실천했다.
호산 스님은 옛날 선사, 강백들은 “가난하여 송곳 세울 땅도 없으나 늠름한 기상은 수미산을 누르는 수행가풍이 있었다”면서 “정처없는 구름, 고고한 학처럼 무유소의 정신으로 한 생각 돌려 일념회광(一念廻光)으로 자신의 내부를 관조시키는 수행가풍이 진작된다면 한국불교의 미래는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즉 상락아정(常樂我淨)의 현전에서 오직 진리를 원력삼아 대열반을 증득하라는 메시지를 승가세계에 던지고 있다.
호산 스님은 “우리가 무지의 눈으로 이 세상을 볼 때 상(常)이라고 보고 낙(樂)이라고 보고 아(我)라고 보고 정(淨)이라고 본다. 왜냐면 생멸이 있기에 고요함이 있고 번뇌가 일어남으로 자기를 묶어놓은 그것을 끊어 없애는 근기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것에 대해 호산 스님은 일본의 어느 선사 얘기를 했다. 어느 날 당대의 이름난 정치인이 찾아왔다. 그때 그 선사는 찻잔에 차를 따르고 있었다. 차가 철철 넘치는 데도 계속 따르고 있었다. 정치인은 그 모습을 보고 “스님 찻잔에 차가 넘치고 있지 않습니까?” 하면서 손을 잡았다. 그러자 차를 무심히 따르던 그 스님은 “마음을 비우라” 하고 청천벽력같이 소리를 내질렀다고 한다.
호산 스님은 “모든 빈 것을 채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무위진위의 진면목을 깨칠 수 있다”며 “우리의 마음은 넘치지도 않고 채워지지도 않는 것처럼 나의 잣대로만 세상을 재는 어리석음을 타파해야 한다”고 밝혔다.
호산 스님은 “산인(山人)은 그대로 인데 세속 인간들은 자기 근기대로 채우고 못 미치는 것을 따지고, 그러나 산은 그 스스로 넘친 적도 모자란 적도 없다”며 “산인(山人)은 아무 이론을 배우지 않았는데 산과 내가 하나가 되는 혜안을 자연스레 터득, 결국 산안(山眼)과 심안(心眼)을 여는 이치라”고 말했다.
호산 스님은 “수행납자의 살림살이는 청풍명월(淸風明月)도 내 소유요, 청산백운(靑山白雲)도 내 소유라는 “부유만덕이 있어야 한다”며 “자가보장(自家寶藏)의 보물을 제외하고 소유물을 베풀 수 있어야 만물과 더불어 친교 할 수 있고 자성의 영토를 무한대로 넓힐 수 있다”고 말했다.
호산 스님은 또한 “우리 인간은 한 번 생을 다하면 육신은 흙이 되고 바람이 되어 자연과 결합해 버려 흔적을 찾을 길 없지만 자신의 과업은 항상 자손과 집안에 영향을 미친다.”며 “살아있을 때 육체가 지닌 관능과 욕구 번뇌 사상(捨象)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무상보리를 성취, 해탈적 차원으로 승화시켜 일체의 선한 공덕을 일체중생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호산 스님은 자신의 “출가의 목적도 자성을 밝혀 자아 탐구와 존재의 본질을 개오(開悟)하는 데 있으며, 자신이 성취한 오도적 삶을 일체중생에게 회향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호산 스님은 “서산대사는 선가귀감을 통해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편하게 한가함을 구해서가 아니며,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고 한 것도 아니며, 명예나 재산을 구해서도 아니다. 오로지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며 번뇌의 속박을 끊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출가했다’고 말했다.
호산 스님은 게송하여 말하되,
“마음이란 별것이 아니다. 보물든 창고뿐이지. 내 속에는 보물밖에 없다는 것이 즉심즉불이다. 창고로 가 보아라. 보물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마조의 지침이었다. 창고로 가라. 네 집으로 돌아가라. 세상 사람들은 왜 이렇게도 오래 길바닥에서 헤매고 있느냐. 왜들 집으로 돌아가지 않지. 집은 어디가 집일까. 하늘나라가 집이지. 부처님을 만나려면 마음 속으로 들어가야겠지. 천국으로 가는 길을 묻는 사람에게 시냇물 흐르는 소리로 들어가라고 했다잖아.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어디지. 내 마음이 있는 곳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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