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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불교조계종 노고사 회주 해인 대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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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9-08 11:08 조회1,7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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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이 합장하고 가섭이 눈썹을 날리는 영산회상 노고사
선가의 진진한 진공묘유의 묘미가 있는 참선도량
촛불도 제몸을 태우지 않으면 광명이 나투지 않고
향도 제몸을 사루어야 법향의 향기가 나는 법이다.
우리 불자들은 정신일도 무사무념하여 무아의 경지 개척해야

 

노고사 회주  해인 대종사
H.P : 010-9922-3335
세종특별자치시 서북구 성환읍 왕림리 산 40

 

조가(曹家)의 여인
법좌에 올라 이르시되 “오늘 단비가 부슬부슬 내리니 모든 일이 마땅하여 모심기도 끝내고 채소도 풍성하게 자라니, 아난(阿難)이 합장(合掌)하고, 가섭이 눈썹을 날리는 시절이라 곧 영산회상이로다.” 다시 일반 기특한 일이 있다 하시며 선상(禪床)을 한 번 치시다.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삼처전심(三處傳心)을 하셨는데, 그 가운데서 꽃 한송이를 들어 보이신 것, 하나만 알면 이것이 곧 구족다문(具足多聞)인 것이다.
이 법은 입을 열어 말과 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종사가 법상에 오르기 전에 법이 다 되었고 청중이 자리에 앉기 전에 법이 다 되었다. 이것이 곧 구족다문(具足多聞)이다.
여기서 살펴 보아야 선가(禪家)의 진진한 묘미(妙味)를 맛볼 수 잇는 것이다.

부처님의 진리 법문은 참으로 만나기 어렵고 듣기가 어려운 것인데 한 번 들으면 마치 천년 만년이나 어두운 방에 등불을 밝힌것과 같고 천년 만년이나 더럽혀진 못에 수청주(水淸珠)를 넣은 것과 같다. 이 수청주라는 구슬은 아무리 더러운 못에라도 넣으면 물이 맑아지는 보배 구슬이다. 그래서 금생에 오만가지 망상 번민과 모든 죄업이 이 법문만 들으면 다 없어진다.

이 대승법문(大乘法門)을, 모르고 듣더라도 한 번 들어서 여러분들의 여래장(如來藏)에다 넣어 놓으면, 여러분들이 나중에 이승을 떠나서 나쁜 갈래를 헤매더라도 이 진리 법문이 여러분들을 밝은 길로 인도한다. 곧 이 진리 법문이 영혼의 길잡이다.
일상생활에 애로와 난관이 있으면 용기를 내어야 한다.
물도 흘러가다가 바위에 부딪치거나 돌에 부딪치면, 소리를 내며 허공에 치솟아 흘러가고 또 깊은 구덩이를 만나면 많이 모여서 내려간다.
물도 흘러가다가 애로가 있으면 그렇게 용기를 내는데, 하물며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는 진로에 에로가 있고 난관이 있을 때, 그것을 타개할 용기가 없어서야 되겠는가, 용기를 내야 한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 하는 용기를....
이 부처님 법문은 짐승이나 허공을 나는 새나 미물들이 들어도 속이 시원해 지고 해탈을 얻게 되는데, 왜 그런가 하면 중생들의 말은 망상속에서 나와 모두 때와 더러운 염착이 있지마는, 부처님은 탐진치(探嗔痴)의 삼독(三毒)과 팔만사천 진로가 다 벗어진 거기서 나오는 말이기 때문에, 짐승이나 새가 듣고는 무슨 소리인지 몰라도 듣기만 들으면 속이 시원해 지는 것이다.
이 자리는 본래 고요한 자리건마는 자기 스스로 잘못해서 구정물 일으키듯 흔들어 놓은 것이다. 본래 고요한 자리를....
지극히 고요하면 편안하고 아늑한 경지가 들어오는데 몸과 마음이 함께 편안해진다. 복잡하고 번민스럽던 마음이 맑아져서, 그 마음이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한다. 진리를 통하는 것이다.

비가오니 모심기를 모두 마쳤는데, 볍씨를 모판에 뿌리면 거기서 움이 트는데 볍씨의 귀에서 터진다.
나락이 안썩으면 움이 안 터진다, 움이 터져 벼가 자라서 가을에 나락을 거둘 때에는 한줄기에 적어도 이백오십낱이나 붙는다. 한알의 나락이 썩어서....
촛불도 제몸이 타지 않으면 광명(光明)이 나지 않는다.
향도 제몸을 사루어야 향기가 난다.
자기가 가정을 위하고 사회를 위하고 국가를 위하고 세계 인류를 위하자면, 자기의 몸이 나락 썩듯이 헌신적인 정신으로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화평의 미덕을 얻을 수 있다.
나락이 썩고 향이나 초가 제몸을 태우며 빛을 내듯이......

盡日尋春不見春   진일심춘불견춘
芒鞋遍踏龍頭雲   망혜편답용두운
歸來笑撚梅花臭   귀래소연매화취
春在枝頭巳十分   춘재지두사십분

봄이와서 봄을 찾으러 아무리 다녀도 허탕만 치고
공연히 짚신 신고 이 산 저 산으로 헤매였네
집에 돌아와 웃으며 후원 매화 가지를 휘어잡아 향기 맡으니
가지마다 봄은 이미 무르녹았네

 

봄을 찾으려고 자꾸 다녀도 봄을 못 보았는데 집에 돌아와 앞뜰에 매화 가지를 웃으며 휘어잡아 꽃 향기를 맡아 보니 봄이 거기에 꽉 여려 있다는 말인데, 이 자리 소소령령(昭昭靈靈)하여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이 자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조금도 여의지 않고 곧 자기에게 있건마는 흡사 천리만리나 멀어지고 어두워진 것 같이 됐다.
예전에 기바(耆婆)가 의학을 십년간이나 배웠다.
십년을 배운 뒤에는 “얼마나 더 배워야 의사가 되는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그래서 자기 스승에게
“제가 십년동안이나 의학을 배웠는데 얼마나 더 배워야 의사가 되겠습니까”
선생의 말이
“그래, 그럼 네가 어디든지 가서 약초가 아닌 풀을 뜯어 오너라.”
기바가 산으로 들로 헤매며 약초 아닌 풀을 찾아 다녔으나 약초 아닌 풀은 하나도 없고 모두 다 약초였다.
이 풀은 어느 병에 해당되고 저 풀은 어떤 병에 잘 듣겠다는 것이 마치 거울속에 자기 모습보듯이 환히 알겠다.
이 산 저 산으로 다녀 봐야 도저히 약초 아닌 풀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돌아와 스승에게
“제가 사흘 동안이나 온 산천을 다 헤매며 찾아 보았지만, 약초 아닌 풀은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그만하면 훌륭한 의사 노릇할 자격이 있구나, 이제 가거라.”

여러분들이 이 도리를 참구(參究)하는데 천칠백가지 화두 가운데 하나를 들고 참구한다.
공부하는데 화두가 금방 거기 있던 것이 어디로 갔는지, 문을 닫아 놓았는데 산으로 들로 다녀오고 그렇지 않으면 지나간 일 현재 일 미래 일이 죽 끓듯이 끓고 도(道)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렇지마는 이 자리를 바로 알면 온갖 것이 도 아님이 없다.
우리의 일상생활, 밥 먹고 옷 입고 하는 온갖것이 도 아님이 없다. 정신을 한곳으로 모아서 무사무념(無思無念) 그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
예전에 고인(故人)의 기연(機緣)을 하나 이야기하려 한다.
소산 광인선사라는 분이 있었느데, 누가 불법을 물으면 나무로 깎은 뱀을 들어 보이고는 “이것이 조가의 여인이니라”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불법을 어떻게 물어도 늘 나무뱀을 들어 보이곤 하였는데, 이것이 곧 법문인 것이다.
거기에는어떠한 사유가 서려 있는가 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조씨라는 사암이 배를 타고 바다를 향해하다가, 어떻게 잘못하여 그곳 바닷물에 빠져 죽었다. 동행하여 가던 사람이 조씨의 부인에게 가서 “당신 남편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슬픈 소식을 전하여 주니 그 부인이 애통해 하며 자기 남편이 빠진 곳에까지 데려다 달라고 한다. 그래서 함께 배를 타고 남편이 빠진 곳에 오니, 그 여인이 바다에 뛰어들자 이내 흔적이 없이 가라앉았다. 사흘이 지난 뒤 바닷가에 조가의 여인이 죽은 자기 남편을 껴안고 파도에 떠밀려 왔다.
그 망망대해에 어디가서 죽은 남편을 껴안고 나왔는지, 참으로 불가사의한 노릇이다.
소산스님이 공연히 나무뱀을 들고 이것이 조가의 여인이다. 한 것이 아니라 조가의 아낙이 바다에 뛰어들어 자기 남편의 송장을 껴안고 바닷가에 떠밀린 그것을 말한 것이다.
송장이 가서 송장을 찾아 안고 떠밀린 뜻은 거기에 잇다.

소산스님이 그렇게 늘 설법을 하였는데 그 뒤에 자수선사라는 분이 여기에 착어(着語)를 달았다.

 

別面不如花有笑   별면불여화유소
離情難似竹無心   이정난사죽무심
因人設着曹家女   인인설착조가여
引得想思病轉深   인득상사병전심

헤어지는 모습은 꽃이 웃는 것만 같지 못하고
이별의 정은 무심한 대나무와 같을 수 없어라
사람들에게 공연히 조가의 여인을 말해서
서로 생각하여 병만 점점 깊게 하는구나

 

소산스님의 나무뱀 이야기에 대하여 한 방망이 준 것인데, 어디에 방망이를 준 곳인가? 그것을 살필줄 알아야 한다.
또 규봉 종밀선사는 출가(出家)하기 전에 제자백가(諸子百家)에 두루 통한 문장이었다. 환복(宦福)이 없어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은 과거에 붙어서 벼슬을 하는데 초시(初試)한번도 붙어보지 못하고 낙방만 하였다.
이번에도 과거보러 갔다가 낙방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전부터 잘 알고 진던 스님을 만났다. 그 스님은 신도집에 경(經)을 읽어주러 가는 길이었다.
“벼슬을 하려고 과거보러 갔다오는 길인데 나이는 자꾸 먹어가고 아직까지 벼슬할 복이 못되는지 초시 한 번도 못하였다”
고 하자 그 스님이
“그까짓 세상허명(世上虛名)을 무엇하러 구하려는가? 우리 경 읽는데나 함께 가게나”
해서 함께 동해하였다.
앞에서는 스님네들이 경을 읽고 규봉스님에게는 원각경(圓覺經)을 주어 뒤에서 보게 하였다. 규봉스님이 그 경을 읽어보니 “세상에 이러한 도의 진리가 있었건만 내가 이제 만나게 된 것이 너무 늦지 않은가?” 이렇게 감탄을 하고 발심(발심)을 하였다.
그 스님네들에게 수행하는 법문을 묻고 부지런히 수행을 하였는데, 집에서 아무리 열심히 하여도 전문적으로 할 수가 없고 지장이 많아서 출가하기로 작정하였다.

입산하며 읊은 입산송(頌)이 다음과 같다.

投湯消池氷  투탕소지빙
氷堅湯赤凝  빙견탕적응
將氷投釜裡  장빙두부리
針芥合自然  침개합자연

물을 끓여서 못에 얼음을 녹이려고 부으니
얼음이 녹는 듯 하더니 끓는 물조차 다시 언다
얼음을 가마솥에 집어 넣으니
비로소 바늘 끝에 겨자씨가 자연히 서로 꿰이듯 하네

 

바늘 끝에 겨자씨가 꿰이다는 말은, 수미산에서 염부제(염부제)에 바늘을 세우고 겨자씨를 던져서 맞춘다는 말인데 참으로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공부도 여럿이 모여서 하니 자연히 잘된다는 말이다.

상(商) 대재라는 이가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성인이십니까?”
“나는 널리 알고 두루 기억할 뿐이지 성인은 아니다”
“그러면 삼왕(三王) 하(夏)의 우왕, 은(殷)의 탕왕, 주(周)의 문왕이 성인이십니까?”
“삼왕은 지혜와 용기를 잘 썼을 뿐이지, 성인인지 아닌지는 내가 알 바 아니다.”
“오제(五帝) 복희, 신농, 황제, 요왕, 순왕이 성인입니까?”
“오제는 어질고 의로움을 잘 썼을 뿐이지, 성인인지 아닌지는 내가 알 바가 아니다.
“삼황(三皇) 천황씨, 지황씨, 인황씨가 성인입니까?”
“삼황은 때를 맞추어 정치를 잘한 사람들이지 성인은 나의 알 바가 아니다.”
이 말을 듣고 태재가 크게 놀랬다.
“이런 사람들이 성인이 아니라면 그러면 어떠한 사람이 성인입니까?”
공자님이 얼굴을 움직여 잠깐 있다가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서방에 큰 성인이 있는데 다스리지 않아도 어지럽지 않고 말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믿고 교화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행하니, 탕탕무애(蕩蕩無碍)하며 사람이 능히 무어라 이름할 수 없다.”
 

이 말을 의거할 것 같으면, 공자님도 부처님을 큰 성인인줄 능히 안 것같다.
나의 이런 말들에 낙처(落處)를 알아야 한다.
반야바라밀이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이 이름이 반야바라밀이요, 금일 설법이 설법이 아니라 이 이름이 설법이니라, 이 가운데 기특한 일이 하나 있으니 잘 들을 지어다 하고

 

큰 소리로 할 일할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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