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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불련 윤을암 전국 중앙신도회장 포교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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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1-31 12:13 조회1,7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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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교는 교세확장이 아니라 파사현정으로 이끄는 책무
2018년 한국불교 포교대상 수상영예 최고전법사 등극
30년 인생 포교현장에서 부처님 교리 산문 밖 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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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수행을 하든 거기에는 바라는 것,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있게 마련입니다. 또 이를 통해 무엇을 이룰 수 있고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게 있습니다.
우선 선 수행을 하면 일상생활에서 직관력, 예지력, 판단력이 생기고 많아집니다. 집중력이나 기억력이 좋아지고 객관적 자기 성찰력이 생깁니다. 또한 무언가 창조할 수 있는 독창적인 힘을 기를 수 있고 분석력도 커집니다. 불안감이나 두려움, 공포심도 극복 되므로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 같은 심신의 안정과 평온은 한국은 물론 일본, 미국, 유럽 등의 과학자들이 선 수행자들의 심리상태와 실생활을 분석해 본 결과입니다. 제가 해보니까 선 공부를 하면 첫째 마음이 편안해져요, 가부좌를 틀고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을 밑으로 끌어내려서 편안하게 앉아 있는 그 순간에 이미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낍니다.
궁극적인 개달음의 경지까지 가지 않더라도 가부좌를 틀고 앉아 화두를 들기 전에 호흡만 몇 번 가다듬어도 우선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사람들이 수행을 하는 것은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뭐가 잘 안되고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법당에 와서 기도하고 염불하거나 가부좌를 틀고 앉는 순간에 이미 내 마음에 떠 잇는 잡다한 생각들이 가라앉고 사라집니다.
이것만 제대로 하더라도 보통 사람들이 더둘 수 있는 선 수행의 효과는 충분합니다. 그게 안된 상태에서 사람을 대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나로부터 출발합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나를 중심으로 한 세상의 도든 것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만들고 유지하고 파괴하는 주체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선은 다른 말로 “나 자신에 대한 눈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으로 뭔가 해본다면 그 도달점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입니다. 다시 말해 생각을 통해 해답을 얻고자 하면 그 생각은 내가 지금까지 인식하고 경험했던 범위 안에서 밖에 결론을 도출해 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간화선적인 참구방법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에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게 선수행의 매력인데 다른 말로는 직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무,사,시심마(是甚麽) 등의 화두를 참구해서 대오, 즉 큰 깨달음을 얻었을 때 세상의 모든 것들이 환히 보인다고 선사어록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깨달음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그게 정말일까 의심하지만 조사어록마다 오두 “네가 그렇게 공부하면 그런 깨달음을 얻는다”고 되어 있어요, 한두 사람이 그랬다면 그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살았나 보다 할 수 있지만 조사어록에 한결 같이 그렇게 공부하면 된다니 안 믿을 수 있습니까?
문제는 해보지 않는 데 있지요, 물론 선은 궁극적인 깨달음을 추구해야 우리 인생이 완벽히 바뀌는 대전환이 일어나지만 일상적인 삶에서도 조금만 집중해서 해보면 뭔가 달라지는 게 있고 효과가 있는 것이 선 수행입니다. 참선 공부하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적도 교화에 있습니다.
자신의 세계를 감추고 이전 성인의 발자취도 등지면서 시내에 들어가 술집, 고깃집 등 여기저기 다니면서 모든 사람들을 교화해 성불하게 하는 것이지요, 소를 찾아가는 열 가지 단계가 있는 그림인 심우도의 마지막이 입전수수라는 내용입니다. 풍광이란 자기의 모습, 즉 자기의 주관 사상, 관점, 견해 등인데 이걸 다 묻어 없애 버린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게 있으면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제가 스님이다, 교수다 하는 생각으로 꽉 차 있으면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특히 종교인들은 자기 견해와 신앙, 신행에 휩싸여 그것만 옳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만이 옳다면서 무조건 믿으라고 강조합니다. 거기에 대해 저는 이런 비유를 듭니다. 육조스님도 <육조단경>에서 사람들을 제도한 다음 내 공부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 편한 것을 먼저 구하는데 지장보살님은 일체중생이 부처가 되기 전에는 내가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편안해지기 전에는 자기가 그렇게 될 꿈도 꾸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자미득도 선도타라 내가 아직 득도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제도해야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좋습니까.
선의 목적은 내 자신에 대한 자각, 성찰로부터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구경의 깨달음을 얻도록 해주는 데 있는 것입니다. 무정설법(無情說法) 이라는 말 들어 보셨지요?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같은 무정물도 설법을 한다는 거예요 동산양개 스님은 우리에게 눈,코,귀,입이 다 있는데 왜 ‘반야심경’에선 무안이비설신의라고 했을까 하는 생각으로 공부했는데, 물가를 지나다가 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깨쳤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저도 다 물가를 자나갔지만 왜 누구는 깨치고 누구는 못 칠까요? 공부하려는 마음이 있을 때 깨친다는 것이지요 ‘육조단경’에서는 이것을 지혜의 큰 바람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도 마음속에 그러한 바람이 불도록 크게 발심해서 자기 안에 있는 미혹의 먹구름을 일시에 불어 없애도록 정진하려는 마음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한민련” 중앙신도회장으로서 오직 부처님 진리를 널리 홍포하고 모든 중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한국불교의 포교 역사를 다시 쓰는 전설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최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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