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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묘유 진리 깨친 횡성 금봉암 무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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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2-23 10:46 조회2,3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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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묘유 진리 깨친 횡성 금봉암 무산스님


무산 스님은 “자기의 한마음을 지키는 것이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 보다 낫다.”며 “항상 딴 부처님만 생각하면 생사를 면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무산 스님은 “어리석은 사람은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나고자 하지만 깨친 사람은 그 마음을 스스로 깨끗이 할 뿐이라”며 대저 “중생이 마음을 깨쳐 스스로 건지는 것이지 부처님이 중생을 건져주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무산 스님은 금봉암을 이끌면서 “한마음 밝게 가지면 세계 일화가 만발하여 정토의 길이 열리고 지구촌 중생이 너와 내가 차별없이 하나되는 해탈의 평화세계가 구현된다”고 말했다. 무산 스님은 “제법은 모두 인연소행이며 법에 따라서 나고 법에 따라서 간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무자성(無自性)이요, 무거래요, 결국 공(空)이라”고 말했다.


모양에 칩착하여 참됨 없으면
얼굴을 대하여도 천 리 같이 먼 것을
마음 비우고 도를 체달하면
천지가 한 집 일가족이니라.

親친相상迷미眞진 對대面면千천里리
虛허心심體체道도 天천地지一일家가

무산 스님은 게송하여 말하되
“내외개해탈(內外皆解脫) 신심실평등(身心悉平等)
 영겁주정념(永劫住正念) 무착무소계(無着無所繫)

안과 밖이 모두 해탈이면 몸과 마음이 모두 평등하고
영겁토록 정념에 머무르면 집착도 없고
얽매임도 없으리라” 말했다.


무산 스님은 “사문납자는 육근과 육식(六根六識)이 미분전경계(未分前境界)에 도달하면 삼라만상을 모두 망각하고 무심삼매에 입정하여 경계에 들어가면 깨닫지 않을래야 깨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무산 스님은 “이 경계에 들어가면 무진세계(無盡世界)가 고요해지고 청정(淸淨)해지며 또한 고요하고 청정하다는 생각까지도 자연히 없어진다”고 했으며 “여기에는 좁고 좁은 그러한 곳에 머물다가 홀연히 일기일경상(一機一境上)에 광탄무변(廣坦無邊)의 대천세계가 현발(現發)한다”고 밝혔다.
무산 스님은 “이 세계는 허공도 용납할 수 없는 굉장(宏壯)한 경지를 투과(透過)하며 또한 보게 되는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일인(一人)이 발진귀원(發進歸源)하면 시방허공(十方虛空)이 실개소망(悉皆消亡)하여 요득심신도무여(了得心身都無餘)하면 원통시방법왕신(圓通十方法王身)이라(몸과 마음을 요달하여 남음 없으면 시방에 법왕신을 원통한다)”고 했다.
무산 스님은 “이와 같이 발진귀원은 미묘해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물건이 홀연히 우주에 가득찰 만한 큰 물건이 되는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삼두육비(三頭六臂)를 갖춘 대력지인(大力之人)이 되어서 십자가두(十字街頭)에서 칠종팔횡(七縱八橫)을 하게 되어 그 앞에는 누구라도 감히 설 수가 없게 된다”고 말했다.
무산 스님은 옛날 덕산 스님이 말했던 선지를 인용했다.
덕산 스님은 “궁제현변(窮諸玄辨)이라도 약일호(若一毫)를 치어태허(置於太虛)요, 갈세추기(竭世樞機)라도 사일적(似一滴)을 투어거학(投於巨壑)이로다. 모든 현변(玄辯)을 다 하더라도 한 터럭을 태허공(太虛空)에 두는 것과 같고 세상에 추기(樞機)를 다 하더라도 물 한 방울을 큰 골짜기에 던지는 것과 같다”고 했다.
무산 스님은 이어서 “아자금이후(我自今以後)로 갱불의천하노화상설두(更不疑天下老和尙舌頭)니라(내가 이후로부터 다시는 천하 노화상의 말끝에 의심이 없노라)”고 말했다.
무산 스님은 “우리가 이러한 견지(見知)를 얻으면 일생을 수용하여도 다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수용하여도 다함이 없다”고 밝혔다.
혜명 스님은 늘 얘기하기를 “만겁(萬劫)에 독보건곤(獨是乾坤)하고 요요명명(了了明明)하며 황황혁혁(晃晃赫赫)하고, 원통원명(圓通圓明)한 경지와 무진(無盡)의 불가설제법(不可說諸法)을 성취해서 마음대로 수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기에 옛날 황벽 스님은 게송하여 이르기를,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하니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요,
약비일번한철골(若非一番寒徹骨)이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다.
생사의 진로에서 벗어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니, 긴히 마음머리를 잡아서 한바탕 지을 것이다.
만일 찬 것이 한번 골수에 사무치지 아니 할 것 같으면 어찌 매화의 향기가 코에 가득함을 얻을 수 있으리요.”
“백억건곤장안리(百億乾坤長安裡)에
임운등등락만반(任運騰騰樂萬般)이라
백억이나 되는 건곤의 장안 속에서 임운등등해서 오만 가지가 다 즐겁도다.”
무산 스님은 조주 스님 회상에 어떤 스님이 오래 머물러 있다가 하직 인사를 했던 선문답을 소개했다.
어떤 수좌가 하직인사를 하러 가니 조주 스님이 “유불처(有佛處)에 부득주(不得住)하고 무불처(無佛處)에 급주과(急走過)하여 삼천리외(三千里外)에 봉인(逢人)거든 막착거(莫錯擧)하라(부처 있는 곳에는 주하지 말고 부처 없는 곳에서는 급히 지나가서 삼천 리 밖에서 사람을 만나거든 그릇을 들어 보이지 말라)”했다. 그랬더니 수좌가 답하기를 “임마즉불거(恁則不去)입니다(그렇다면 가지 않겠습니다)” 하니 조주 스님이 말씀하시길 “적양화적양화(摘楊花摘楊花)로다(버들 잎을 따고 버들 잎을 따는구나)”하셨다고 했다.
무산 스님은 옛날 방거사가 초암중(草庵中)에 독좌(獨坐)해 있다가 갑자기 말하되, “난난(難難)이여! 백석유마(百碩油麻)를 수상난(樹上難)이로다(어렵고 어려움이여! 백석이나 되는 유마를 나무 위에 펼치도다)”하니 방파 스님이 이 말을 듣고 말하되 “이이(易易)여, 백초두상(百草頭上)에 조사의(祖師意)로다(쉽고 쉬움이여! 백 가지 풀 위에 조사의 뜻이로다)” 방거사의 딸 영조 비구니가 이 말을 듣고 있다가 “야불난야불이(也不難也不易)여! 기래끽반곤래수(飢來喫飯困來睡)로다(어려움도 없고 쉬움도 없음이여!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곤하면 잠자는게 도다)”고 했다.
무산 스님은 이 법문은 “삼천 리 밖에서 수수독립(垂手獨立)해서 종동과서(從東過西)하며 마음대로 하는 시절을 말한 것이라”면서 “이 정도의 근기가 되면 공부를 필한 대장부가 되어서 어떤 법이든지 능소능대하게 마음대로 쓸 수가 있다”고 밝혔다.
무산 스님은 천고의 현묘한 법장을 간직한 비산비야 기원정사에서 무심도인의 견지와 경계를 말했다.
“운재불광한불철(雲在佛光閑不撤)이니
수류간하태망생(水流澗下太忙生)이로다.
구름은 기원정사에 한가로히 머무는데 흐르는 물은 바위틈에서 무던히도 바쁘더라.”
무산 스님은 “몸과, 말과, 뜻이 함께 청정하면 그것이 곧 부처님이 나투신 것이라”며, “부처는 자기 성품 속에서 지을 것이며 몸 밖에서 찾지 말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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