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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암야의 등불 밝혀 예천 감천 약사암 상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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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2-23 10:59 조회1,8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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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암야의 등불 밝혀 상현스님


상현 스님은 “내가 본래 이 땅에 온 뜻은 법을 전하고 중생을 구할뜻이며, 한 꽃에 다섯 잎사귀 피어나니 결과가 잘 이루어지도다.”하면서 “한 꽃은 달마요, 잎사귀는 혜가, 승찬, 도신, 홍인, 혜능 조사님이라” 밝혔다.
상현 스님은“눈을 보아도 보는 상이 없으면 분별이 없고 귀로 듣고도 듣는 분별상이 없으면 시비가 끊어진다”며 우리 불자들이 “시비분별심을 한꺼번에 모두 놓아 버리면 청산은 적적한데 어두운 밤 달만 밝은 도리를 깨칠 수 있다”고 말했다.

만 리에서 바람이 불어오되 산은 움직이지 않고
천 년 동안 물이 쌓여도 바다는 한량 없도다.
꽃은 난간 앞에서 피나 소리가 들리지 않고
새는 수풀 속에서 울고 있으나 눈물은 보이지 않는구나.

萬만里리風풍吹취山산不부動동 天천年년水수積적海해無무量량
花화笑소檻함前전聲성未미聽청 鳥조啼제林임下하淚누難난看간

상현 스님은 게송하여 말하되
“신위도원공덕모(信爲道原功德母)요
자양일체제선근(滋養一切諸善根)이라
약인욕식불경계(若人欲識佛境界)하니
당쟁기의여허공(當爭其意如虛空)하라.

믿음은 도의 근원이 되고 공덕의 어머니가 되어
일체 모든 선근을 자라나게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부처님의 경계를 알기 원할진대
마땅히 그 뜻을 아무 시비 없는 저 허공계와 같이 하라.”


상현 스님이 말씀하시길 “평지상(平地上)에 사인(死人)이 무수(無數)라. 과득형극림(過得刑棘林)해야 시호수(是好手)라(평지 위에서 죽는 사람은 없고 가시밭을 지나가야 좋은 솜씨라)”고 선지를 말했다.
상현 스님은 예전에 임제 스님의 제자인 삼성 스님이 설봉 스님을 찾아가 묻기를 “투망금린(透網金鱗)은 미심(未審)이나 이하위식(以下爲食)이라(그물을 뚫고 나온 금붕어는 무엇을 먹습니까?)” 했다. 설봉스님이 말씀하시길 “대여출망래(待汝出網來)하여 향여도(向汝道)하리라(네가 그물을 뚫고 나오거든 너에게 이르리라)” 했다.
삼성 스님은 이 게송을 듣고 “일천오백인선지식(一千五百人善知識)이 화두야불식(話頭也不識)이로다(천오백 명을 거느린 선지식이 화두도 알지 못하는구나)” 했다. 또한 설봉 스님이 말하되 “노승주지사번(老僧住持事煩)이로다(노승의 주지사가 너무 번거롭다)”는 문답을 말했다.
그 후에 삼성 스님이 설봉 스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설봉 스님이 원숭이를 보고 말하되 “저미후(這)가 각각 배일면 고경(各各背一面古鏡)이로다(저 원숭가 각각 거울 하나씩을 등에 지고 있다)” 하니 삼성 스님이 말하되 “역겁무명(歷劫無名)이거늘 하이창위고경(何以彰爲古鏡)이라(몇 겁을 지내도 이름이 없거늘 어째서 고경이라고 합니까?)” 하니 삼성 스님은 또 말하되 “1천5백8인의 선지식이 화두야불식(話頭也不識)이로다”했다. 그랬더니 설봉 스님도 역시 말하기를 “노승(老僧)이 주지사번(住持事煩)이로다”했다.
또 조주 스님은 어린 사미(沙彌)로서 천리 밖에 있는 남전 스님을 친견하려 본사(本師)되는 스님과 같이 있었다. 그때 남전 스님 처소에 이르러서 조실방에 들어갔다. 그때 남전 스님이 누워계셨는데 어린 사미를 보고 스님께서 묻기를 “어디서 왔느냐?” 하니 조주 스님이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하였다. 남전 스님은 “그러면 서상을 보았느냐?” 하니 조주가 말하되 “서상(瑞像)은 즉불견(卽不見)이거니와 지견와여래(祗見臥如來)니라(서상은 보지 못했지만 다만 누운 부처님을 친견했습니다)” 남전 스님이 되묻기를 “이시유주사미(爾是有主沙彌)아 무주사미(無主沙彌)아(네가 주인이 있는 사미냐 없는 사미냐 ?)” 하니 조주 스님은 “주인이 있습니다”고 말했다.
남전 스님은 “너의 주인이 누구인고?” 하니, 조주 스님은 동(東)쪽에서 서(西)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왔다갔다 한 다음 본래 서 있던 곳에 서서 말하되 “맹춘(孟春)이 유한(猶寒)하니 복유화상(伏惟和尙)을 존후기거만복(尊候起居萬福)하소서” 하면서 절을 했다. 남전 스님께서 기특하여 큰 법기로 대접하며 “이 아이는 별채에 두라”고 말했다.
상현 스님은 “조주 스님과 같이 조금도 혼미함이 없이 자유자재로 선지를 나타내 보였다”며 우리 불자들도 “도를 깨달은 바도 없이 생이지지(生而知知)하여 필생의 과업을 능사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주 스님은 80이 넘도록 행각(行脚)을 하며 마조 스님을 비롯해서 80여 선지식을 다 친견해도 개개작가(箇箇作家)라고 했다. 그 80여 선지식이 모두 사숙(師叔) 뻘이 되거나 또는 노덕(老德) 스님들인데도 거기에서 조금도 속지않고 또 막히지도 않았으며 기봉(機鋒)을 서로 주고 받는데 살활종탈(殺活縱奪)을 종횡자재(縱橫自在)로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조주 스님을 모두가 조주고불(古佛)이라고 불렀다.
하루는 조주 스님이 국청사에 한산 습득을 찾아갔었다. 한산과 습득이 부엌에 앉아서 불을 쪼이고 있는데 조주 스님이 말하되 “한산과 습득이라고 널리 들리더니 와서보니 두 마리 수고우(水牛)로다!”고  했다. 수고우란 야생의 들소로서 걸림없이 제 마음대로 다니면서 풀을 뜯는 소이다. 그랬더니 둘이서 이 말을 듣고 부엌에서 나와서 소싸움 하듯이 서로 격투를 했다. 조주가 “질질(叱叱)”하고 꾸짖었다. 여기에서 선객들이 첨언하자면 “양개적(兩個賊)이로다!! 했을 터인데 조주는 어째서 질질이라고 했을까?
그런데 한산 스님이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조주 스님을 쏘아보니 조주 스님은 겁을 먹고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뒤따라서 한산, 습득 스님도 들어가서 묻기를 “아까 우리가 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니 조주 스님은 “손바닥을 치면서 이 가운데 다 살활종탈(殺活縱奪)이 있는 것이다” 했다.
상현 스님은 한때 성해(중앙선학원장) 스님 회상(會上)에 찾아가니 성해 스님이 말하길 “상현대대(祥眩大大)가 하불멱개주처(何不覓介住處)오(상현이가 어찌하여 주처도 찾지 못하는고?)” 했다. 그래서 상현 스님이 묻되 “십마처시모주처(什處是某住處)오(어떤 곳이 나의 주처입니까?)”하니 성해 스님이 “산전(山前)에 유개고사기(有箇古寺基)이라(산 앞에 옛 절터가 있다)”고 했다. 그 말에 상현 스님이 묻되 “화상하부자주(和尙何不自住)오(화상은 어째서 주하지 못합니까?)”하니 성해스님이 답을 않고 그만 쉬었다.
이 선문답에서 ‘산전고사기’는 어떤 곳인가? 또 성해 스님은 수백 명을 거느린 스님인데 왜 주처가 없다고 ‘화상하부자주오’라고 했는가? 성해 스님은 이와 같이 모든 기봉(機鋒)을 항상 구름과 같이 비와 같이 써서 모든 것에 걸림이 없는 선객이다.
성해 스님은 상현 스님에게 오도송을 노래했다.
아금해료여래성(我今解了如來性) 여래금재아유중(如來今在我留中) 아여여래무차별(我與如來無差別) 여래즉시아진여(如來卽是我眞如)
내가 지금 여래성을 풀었음은 여래가 내 몸에 이르리로다.
나와 여래가 차별이 없음은 여래가 즉 나의 진여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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