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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실이든 꿈속이든 항상 깨어 있어야 ,,,횡성 건국사 총무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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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3-05 14:09 조회1,0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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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군 건국사 수암 총무스님

는 현실이든 꿈속이든 항상 깨어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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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으로 지금 이대로의 인식을 육식(六識)이라 하고 꿈속을 잠재의식(潛在意識)이라 하고 깊은 잠속을 무의식(無意識)이라 합니다. ‘진정한 나라는 것은 육식과 칠식과 팔식(八識)을 초월한 나입니다. 하지만 초월했다고 해서 나를 떠나서 따로 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초월하여 육식과 잠재의식, 무의식을 제대로 쓰는 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록 나를 벗어났지만 그 자리는 따로 있는게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자리가 바로 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대로 꼭 맞아서 좋은 것입니다. 즉 나에게 꼭 맞는 이 자리가 온 법계를 만들고 온 세상을 열고 삼라만상을 만들고 온갖 것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나에게 꼭 맞는 이 자리가 무명업식이 진여실상이요, 번뇌망상이 삼매해탈이요, 생로병사가 무여열반이요, 육도윤회가 상락아정인 것입니다. 오늘 법문의 요지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초월한 내가 바로 이며 그 내가 지금의 나이기 때문에 육식과 칠식과 팔식을 쓰지만 본래 나는 물들지 않고 그 자리가 쓰는 것이므로 좋고, 나쁘고, 밉고, 곱고,달고,쓰고 하는 이 속에서 육식과 칠식과 팔식이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보고 싶으면 가고, 하면 할뿐입니다. 우리가 행한대로 보고 듣고 느끼고 일하는 그속에 바로 공부가 있는 것입니다.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지만 거기에 물들지 않고 그대로 일상사를 쓰는 본래 그대로가 평상심인 것입니다. 청정무구하게 있는 그대로의 가 이 삶을 이끌어가는 주체적인 주인인 것입니다.

꿈이라는 것은 현실보다 더 깊은 세계입니다. 왜냐하면 잠을 자거나 자지 않거나 이기 때문입니다. 꿈을 꾸는 것도 나요, 꿈꾸지 않는 나도 라는 것입니다.

그럼 왜 꿈속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두고 허망하다고 할까요? 이는 바로 내가 현실의 세계와 꿈속의 세계를 다르게 보니까 허망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그대로 나이며, 내가 꿈을 꾸는 입장이기 때문에 생각해 보면 그 꿈도 내 삶의 일부분이며 현실 세계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꿈속이나 현실의 나는 이러한 경계속에 결코 끄달려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자유자재로 나를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즉 경계 속에서 벗어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초월한 나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잠이 들거나 꿈을 꾸는 것도 현실의 연장선상인 무의식과 잠재의식의 세계이지만 이것도 하나의 경계입니다. 이러한 경계에서 나를 잃어버리게 되면 결코 그러한 잠재의식의 꿈속 세계나 무의식의 세계인 잠 속에 끄달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바로 꿈도 잠도 내가 쓸 줄 알아야 하며 꿈을 꾸면서도 잠을 자면서도 그대로 내가 깨어있어야 생사에 끄달리지 않고 생사를 벗어나 자유자재하게 쓰는 본래의 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는 현실이든 꿈속이든 항사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생사에 끄달리지 않으며 생사에서 자유자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본래의 나가 나로서 모든 것을 쓰고 펼치고 누리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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