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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조계종 박단사 주지 혜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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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8-28 17:05 조회2,0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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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조계종 박단사 주지 혜민스님

지리산 하동 청학동 화전민 박물관 개설

혜민노인복지재단 설립 노인복지 증진 구현

대한민국 최초 청정 영험도량 급부상

마음 하나에 펼쳐지 대자연 호연지기 체득

중생과 부처는 마음자리 하나에 박단사 머무르고

지리산 박단사 참으로 미묘하고 현묘한 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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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사천 법문이 손가락이자 둥근 달
달마대가 인도에서 중국으롤 건너와 양나라 무제를 만났습니다.
무제는 아주 불심이 지극해서 수많은 절을 짓고 스님들을 공양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덕이 높고 공부를 많이 한 달마대사를 모셔서 “달마대사여, 나는 이 세상에서 왕이 되어 수많은 절을 짓고 수많은 스님을 공양했는데 이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 라고 묻자, 달마대사는 일언지하에 “무공덕”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달마대사가 말한 것은 바로 무제가 모양과 이름에 끄달려 있기 때문에 이를 타파시키기 위해서 였습니다. 즉 무제가 단지 ‘껍데기에 불과한 것에 끄달리지 않고 나 라는 본래의 진면목을 발견하라는 뜻입니다.
달마대사는 “무공덕”이라고 했을 때, 양 무제는 그 순간 참으로 황당했을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그러한 상황이 되면 무제의 마음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저에게 물었다면 “풀잎 마다 우담바라요, 돌맹이 마다 마니보주입니다.” 라고 했을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말씀했다면 무제가 큰 감명을 받아 더 많은 불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며 스님들과 달마대사를 더욱 지극하게 높이 공경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본래의 ‘나’ 자리를 그대로 드러내었더라면, 오늘날 불교가 더 크게 번창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론, 달마대사의 고준한 법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무제의 탓이 더 큽니다만,...
양 무제가 다시 달마대사에게 “내 앞에 서 있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하고 물으니 달마대사는 “모른다” 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최고의 권력자인 무제가 이렇게 물었을 때 차라리 더 큰 깨달음을 주었으면 어떠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만약 내가 그 당시 달마대사의 입장이라면 “부처에게 절 하는 자는 부처요, 제왕에게 절 한 자는 제왕입니다.” 라고 했을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말씀했다면 무제는 그대로 도를 깨쳤을 수도 있고, 아울러 달마대사를 더욱 공경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달마대사는 9년 동안 소림굴에서 면벽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곤욕의 세월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며, 오히려 수많은 도인들에게 법을 일찍 전해 불교가 더욱 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처님은 일찍이 “팔만사천 법문은 본래자리, 마음자리를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것이며 마음자리는 둥근 달과 같은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하자면 법문은 둥근 달을 가리키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둥근 달, 즉 본질적인 나를 제대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나의 본 자리인 둥근 달을 바로 보게 되면 그 순간 우리는손가락, 눈썹, 배꼽, 머리카락 하나도 다 부처가 되어 버립니다. 즉, 둥근달이 되어버립니다. 둥근 달이 따로 있고 손가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가리키는 이 손가락이 그대로 둥근 달이 되고, 온몸 전체가 둥근 달이 되고, 삼라만상이 다 그대로 둥근 달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알아야만 합니다.
이와 같이 팔마사천 법문이 달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말씀 하나 하나가 다 둥근 달이며 모두 본래의 나이고 마음자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선(禪)이 교(敎)가 되고 교가 선이 되는 것입니다. 아울러 선이 율(律)이 되고 율이 선이 됩니다.
선과 교와 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팔만사천 법문을 그대로 소중히 여기고 쓰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삶 그대로가 본래 나의 자리이며 둥근 달이기 때문에 실로 소중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분명히 제대로 알고 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한 생각 때문에 끄달려서는 안 되기 때문에 먼저 자신을 비우고 ‘나’를 보라는 말입니다. 이는 한 생각을 하면 틀리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생각을 해도 말을 하지 않는 것도 바로 나 라는 말입니다. 내가 생각한 것을 말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말하면 틀리다는 것도 아닙니다. 사량, 분별을 통해 말을 해도 나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좋다 좋다 좋다 지금 이대로 꼭 맞아 무명업식(無明業識)이 진여실상(眞如實相)이다.” 이것을 반드시 짚고 넘아가야 됩니다. 일반적으로 본래 나 자리를 가리는 것은 탐진치와 오욕락에 끄달려 무명업식이 생겨서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 중생의 삶은 윤회를 하고 업보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물론 이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근원적으로는 본래 나 자리가 탐진치를 내어  무명업식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물론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이 아니라 본래나 자리가 무명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나가 본래 무명이며 곧 무명이 진여이기 때문에 우리는 밝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고 할 때 나뿐이고 나를 초월한 자리가 바로 진여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 어떤 것도 갖다붙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원래부터 깜깜한 무명이며 곧 이것이 진여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분별할 것이 없으며 또한 걸릴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밝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무명이 진여이며, 진여가 그대로 무명이기 때문에 우리가 중생놀음도 하고 부처놀음도 하는 것입니다.

중생도 부처도 초월해야 부처에게도 집착하지 않고 중생에게도 끄달리지 않고 중생과 부처를 똑같이 쓰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중생이 바로 부처이기 때문에 부처에 빠지지 않고, 부처와 중생에 매몰되지 않고 부처와 중생에 끄달리지 않고, 내가 부처와 중생을 같이 쓰고 누리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절대 나”는 날마다 이렇게 깨어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어야만 우리가 제대로 부처임을 믿고 부처의 길을 밟으면서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되어야만 제대로 공부하고 자신을 가꾸어 펼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인류의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잠속에서, 일상생활에서, 화두와 염불이 일념이 되도록 공부를 하여 본래 나를 깨쳐 견성성불이 되면 두 번 다시 미(迷)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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