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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조계종 사천 마하선원 마하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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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10-28 16:39 조회1,0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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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조계종 사천 마하선원 마하스님
 
초발심의 뿌리를 내리려면
무릇 처음 발심한 사람은 반드시 악한 벗을 멀리하고 어질고 착한 이를 가가이해야 하며 5계와 10계 등을 받아서 잘 지키고 범하고 열고 닫을 줄 알아야 하느니라.  

초발심(初發心)
부초심지인의 지아비 夫는 무릇, 대저 등으로 번역되는 글자로, 글을 시작할 때 흔히 사용합니다. 곧 부창부수(夫唱婦隨)라. 지아비가 부르면 아내가 따르고 아이들이 저절로 따르는 것처럼 먼저 夫 자를 두어 뒤의 글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심은 초발심의 줄인 말입니다.
“처음 발심하였다.”
그렇다면 발심이 무엇인가? 그것부터 분명히 알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발심은 발무상보리심의 줄인 말입니다. 부처님이 증득하였던 가장 높고 거룩한 깨달음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확고히 하는 것이 바로 발심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마음을 처음 일으킨 사람을 일컬어 초발심자 또는 초발심보살이라고 합니다. 결국 지눌스님이 말씀하신 초심지인은 초발심지인의 줄인 말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초발심·발보리심·발무상보리심이 이루어지는 것인가? 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삶이 어떠한가를 정확히 직시할 줄 알아야 합니다. 현재의 삶이 어떠하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때, 어더한 경우데도 동요되지 않는 무상보리심을 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꿈과 같은 인생살이……
인간이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지르게 되는 좋지 않은 삶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모아 보면 신삼·구사·의삼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몸으로는 살생과 도둑질의 음행을 짓고 입으로는 거짓말·추악한 말·이간하는 말·아첨하는 말을 내뱉으며, 생각으로는 탐심과 분노심과 어리석은 마음을 끊임없이 일으킵니다.
그런데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짓는 나쁜 업은 모두가 자기애 때문에 생겨납니다. 나에 대한 사랑에 사무쳐 나에게 맞으면 탐심을 내고 나에게 맞지 않으면 분노를 일으켜, 나에게 사로잡히다 보니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여 어리석은 생각 속에 빠져들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수만 가지 번뇌와 나쁜 말 심지어는 나쁜 행동까지 거침없이 저지르게 되고 맙니다.
결국 갖가지 번뇌에 휘말려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라며 짜증을 내면서 살게 되는 가닭도 따지고 보면 나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번뇌를 좋아하고 번뇌 속에 살기를 바라는 인간은 없습니다. 번뇌가 싫지만 번뇌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인간인 것입니다. 이 지경에 이르러 삶을 솔직하게 되돌아보면, 인생은 꿈속에서 사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중생들이 스스로가 만든 번뇌라는 이름의 꿈을 벗어나지 못하여 세세생생토록 선악의 인과에 휘말리고 생사의 세계를 윤회하고 있습니다. 나서는 늙고 늙어서는 병들고 필경에는 한량없는 고통을 받다가 죽기를 거듭하는 무상의 삶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꿈속에서 한없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깨어날 줄을 모르는 허망의 존재가 바로 중생인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볼수록 꿈과 같고 무상하기 그지없는 인생. 인생이 꿈인 줄을 알 때 참다운 발심이 이루어집니다.

인생을 헤아리니 한바탕 꿈이로다
좋은 일 궂은 일이 한바탕 꿈이로다
꿈속에 꿈을 헤니 이 아니 가소로운가.
어즈버 인생 일장춘몽을 언제 깨려 하느뇨.

과연 우리는 이 옛시조처럼 인생을 한바탕의 꿈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진정한 발심도 어려울 것이 없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입니다. 뿐만이 아니라 옛 고사속의 주인공 노생처럼 마음 가득히 부귀영화를 그리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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