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한국불교조계종

종단소식

한국불교조계종 불령사 효상스님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5-29 14:58 조회1,254회 댓글0건

본문

“만일, 모든 고뇌를 벗고자하거든 마땅히 만족할 줄 아는 법을 알아야”
효상 스님이 가장 많이 써 주시는 휘호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오유지족(吾唯知足)이다. 곧 나는 오직 족함만을 안다는 것으로, 이 법문은 스님께서 그를 따르는 숭속의 제자들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주고 싶으신 인생의 지침인 셈이다.
일찍이 석가 세존께서 우리 인생이 괴로움으로 꽉 차있다고 일러주신 가운데 구하여도 얻을 수 없으니 그것에 괴로움 기이라고 하였던 것을 우리는 잊을 순 없다. 인생의 모든 일은 연기별에 의하여 있어지도록 된 것이있게 되는 것이지, 인연이 없는 것을 억지로 구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하는 바가 크면 클수록 괴로움은 그에 비례해서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구하는 마음을 결연히 버리는 것이다. 달마 대사는“유구개고 무구내락(有求皆苦無求乃樂) :구하는 바가 있으면 괴로움이요. 구하는 바가 없으면 곧 즐거움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지옥이 괴로움의 세계라면그것은 곧 구하는 마음이 있을 때 나타나는 것이며, 극락이 즐거움의 극치라면 그것은 곧 구하는 마음을 내버렸을 때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구지심(有求之心:구하는 마음)을 버릴 수 있게 되기 위하여는, 우리가 새삼스레 구하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의 생명 가치는 본래부터 완벽하다고 하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만 한다. <반야심경>의 가르침대로‘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不增不減] 것’이 우리의 참 생명의 진실한 모습이다.
본래부터 완전무결한 법신생명을 영겁으로 살아오고 있는 우려들이건만,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우리는 이 유한존재인 육신을 우리 자신의 생명 천체인 줄 착각하기 때문에, 그 유한 존재인 육신을 위해서 무엇이든 밖으로부터 얻어 오려고 헤매는 어리석음으로 살아 괴로움에 한숨짓고 지내는 것이다.
이러한 번뇌의 불길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법문이 곧, 오유지족 글귀다. ‘나는 오직 족함만을 안다’는 이 글자는 묘한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 중생들의 마음을 그 자리에서 시원하게 해 주는 것이다.
“너희들 비구여, 만일 모든 고뇌를 벗어나고자 하거든 마땅히 만족할 줄 앎을 관하라. 만족할 줄 아는 법이 바로부락(部落)하고 안온한 곳이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땅위에 누워 있어도 오히려 안락한 것이요, 만족할 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비록 천당에 있더라도 그 마음엔 맞지 않으며, 만족할 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오욕의 끌어당김을 당하는 바가 되어,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의 가련하게 여기는 바가 됨이라. 이것을‘지족(知足)’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 법문은, 현대 물질문명에 사로잡혀 끝없는 욕구 속에서 불만을 호소하는 우리들에게 참으로 긴요한 법문이 아니겠는가? 이《유교경》의 법문을 효상 스님께서는 간단한 한 글자로 써서 수없는 중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계신 것이다. 이 글자에 의해 큰 실수를 면한 사람이 얼마나 않겠으며, 이 글자에 의해 안심을 얻은 사람은 얼마나 많겠는가? 참으로 효상 스님께서는 감로의 법문을 이렇게 내려 주고 계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불교가 세상의 중생들을 구원한다고 할 때,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밑에서 정각을 이루신뒤, 녹야원까지 가셔서 다섯 비구를 제도하셨는데, 그 때 무슨 방법으로 제도하셨는가? 말할 것도 없이 설법이었다. 그 뒤45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중생을 제도하신것 역시 설법으로 하셨다. 설법 아닌 다른 방법으로 무명 속의 중생을 어떻게 제도하겠는가?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보면, 관세음보살도 중생에게 설법하고 계시다.
(아미타경>에 보면 극락세계의 교주이신 아미타 부처님도 지금 설법하고 계신다고 한다. 이와같이 설법이 불교의 생명이다. 우리와 같이 아직 깨치지 못한 중생이라 하더라도 불법에 대한 믿음이 확실하면, 능히 설법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중거는 내가 불교에 신심을 가지게 된 동기가 결코 어느 깨치신 분의 가르침을 받고서가 아니었던 것으로도 알 수 있다.내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공부를 좀 잘 하고 싶어 애태우게 되자 그런 나를 보고 할머니께서 나에게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공부 잘하게 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관음신앙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러한 관음신앙이 나를 오늘날의 수도 생활로 이끌어들인 짓을 생각할 때, 할머님께서 어린 것을 꾀어서 신앙의 세계에 들게 하신 짓이 어찌 헛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때의 할머님은 물론 깨치신 도인이 아니셨다.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가르쳐 주시는 분이 어찌 꼭 깨치신 분이어야만 하겠는가, 그래서 못난 나도 포교를 한다. 이렇게 볼 때, 포교의 원력이 강렬한 분이야말로 진실된 불제자라고 믿게 된다.
효상 스님은 현대의 대보살이다. 수많은 사람을 오유지족 한 마디로 그들의 참생명으로 깨쳐 들어가게 해 주시는 법사다. 우리는 이러한 스님을 모시고 공부하는 대복지인(大福之人)인 것이다.
스님! 만수무강하옵소서. 조주 스님은 120세까지 계졌으니 스님께서 활동하실 기간은 아직 끝이 멀기만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bbdcc262b33153067cd8654fdf4230f1_1590731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